사진으로 본 '건국 60년, 60대 사건' 2008.06.13 ~ 현재
건국60주년을 맞이하여 조선일보사에서 연재하고 있는 '건국 60년, 60대
사건을 소개합니다.
굵직한 사건의 내용과 사건속에 얽혀 있는 사회상을 보면 바로 우리의
자화상을 볼 수가 있어
코블 가족님들게 일독을 강추합니다 !!
29 10월유신
소요나 시위가 일어난 것도 아니었고, 북한이 무력 도발을 저지른 것도
아니었다. 1972년 10월 17일은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무척 평범하고
평온한 날처럼 보였다. 그날 저녁 대통령 박정희(朴正熙)는 갑작스러운
비상조치 특별선언을 발표했다. 전국에 ..
28 7·4 남북공동성명
"중앙정보부장 이후락(李厚洛)입니다. 실은 제가 5월 초 박 대통령
각하의 뜻을 받들어…." 그 다음 말에 놀라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평양에 갔다 왔습니다." 1972년 7월 4일 오전 10시 TV로
생중계된 기자회견에서였다. 분단 이후 2..
27 전태일 분신 사건
"물증 확보해!" 1970년 11월 14일 오후, 조선일보 기자
이상현(李相鉉)은 줄담배를 피우고 있었다(본지 1999년 8월 5일자
기획기사 '아듀 20세기' 중). 데스크의 지시를 받고 성모병원 영안실로
왔지만 막막했던 것이다. 그 전날인 13일 ..
26 새마을 운동
1966년에 '새마을'이라는 담배가 나오긴 했지만 그 말은 아직
일반명사일 뿐이었다. 그것이 실체를 갖춘 사업으로서 떠오른 것은
1970년 10월 2일의 일이었다. 정부가 전국 동·리마다 시멘트
355포대씩을 지급해 환경 개선을 유도하는 '새마을 가꾸..
25 경부고속도로 건설
그것은 자본도 기술도 경험도 없는 상황에서 오직 "하면 된다" 정신으로
밀어붙인 '박정희 감독작(監督作)'이나 다름없었다. 1968년 2월 1일,
대통령 박정희는 지금의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 근처에서 발파
스위치를 눌렀다. 굉음과 함께 바위산이 쪼..
24 3선 개헌과 40대 기수론
기어이 박정희(朴正熙)는 이승만(李承晩)의 전철을 밟고야 말았다.
헌법을 뜯어고쳐 스스로 세 번 연임할 수 있는 길을 열려 했던 것이다.
1969년의 어느 날, 대통령 박정희는 차기 대선 후보로 여겨지던 43세의
전 공화당 의장김종필(金鍾泌)을 불렀..
23 주민등록증의 탄생
"우리가 걱정하는 까닭은, 국민이 향유하고 있는 모든 민주주의적인
자유를 크게 제한당하게 될 것이란 데 있다. …국민의 생활은 늘 공개될
위협 아래 놓이게 된다." 1969년 2월 7일자 조선일보 사설은 미래에
도래할 수도 있는 '통제 사회'의 위험성..
22 전자 산업의 태동
"요 쪼매난 것이 손가방 하나면 몇 만 달러가 된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도 면직물밖에 수출하지못하고 있으니…. 김 박사, 우리나라도
전자공업을 육성하고 싶은데 도와 주시오!"1967년 9월 대통령
박정희(朴正熙)는 미국 컬럼비아대 전자공학과 교수..
21 1·21사태
"박정희의 모가지를 따러 왔다."(김신조)"고약한 놈들, 결국 여기까지
쳐들어왔구먼."(박정희)1967년 5월 제6대 대선에서 116만 표 차이로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 박정희(朴正熙)는 심각한 안보 위기에 직면했다.
그해 북한 김일성(金日成)은 통일 ..
20 김현옥, 서울 개발
제3공화국이 처음부터 수도 서울 개발의 의지를 지녔던 것은 아니었다.
1963년 서울시장이 된 윤치영은 "서울을 좋은 도시로 만들지 말아야
농촌 인구가 몰려오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1966년 모든
것은 달라졌다. 4월 4일 제14대 서울..
19 월남 파병
1964년 봄, 주미대사 김정렬은 워싱턴에 온 주독대사 최덕신을 통해
대통령 박정희가 내린 특명을 전달받았다. "미국 정부 요인들에게 월남
(越南·베트남) 방어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한국군을 파견하겠다고
제안하시오!"그것은 대단히 위험한 선택이었다. 한일..
18 6·3 사태와 韓日협정
1951년부터 1960년까지 한·일 양국은 국교 정상화를 위한 다섯 차례의
회담을 열었으나 실패했다. 경제개발계획의 자금이 절실히 필요했던
박정희(朴正熙) 정부는 대일 국교 정상화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 1962년
11월 12일, 중앙정보부장 김종필(..
17 광부·간호사 西獨으로 가다
1963년 11월 14일자 조선일보는 "'루르'에의 길은 고되다"는 제목으로,
곧 서독으로 떠나게 될 광부들이 하루에 10시간씩 휴일도 없는 강행군
실습을 벌이고 있다는 내용을 전했다. 당시 국민 소득 87달러, 인구
2400만 명에 실업자는 250만..
16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지금 성장률 7.1%라고 했습니까?" 미국 국무부 해외개발처장 해밀턴은
깜짝 놀랐다. 1961년 11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박정희(朴正熙)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동행한 경제기획원 부원장 송정범(宋正範)이
경제개발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그를 만난 ..
15 5·16
1961년 5월 16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처음으로 언론에 노출된 육군
소장 박정희(朴正熙)는 선글라스를 쓰고 뒷짐을 진 채 5·16의
상징처럼 돼 버린 유명한 사진을 남겼다. 사진을 촬영한 조선일보 기자
정범태는 "그는 차갑고 무뚝뚝했다. 저런 사..
14 제2공화국
윤보선(尹潽善)과 장면(張勉). 대한민국의 역대 집권자들 중에서도 이
두 사람의얼굴만은 좀처럼 우리의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그것은
제2공화국이 무척 새롭고도 이례적인 체제 위에서, 정치적으로 너무도
짧은 시간을 불꽃처럼 장식하고는 역사의 뒤안길로..
13 4·19
1960년 2월, 사람들은 비정한 기시감(旣視感)에 몸을 떨었다. 꼭 4년 전
신익희처럼, 4대 대통령 선거의 민주당 후보 조병옥도 선거 직전
별세했던 것이다. 85세 이승만의 4선은 확정적이었다. 노골적으로
야당과 언론을 탄압하던 집권 자유당은 이번..
12 진보당 사건
"우남(이승만)이 기어이 죽산(조봉암)을 죽여버릴 작정인 모양이더군.
""들었어. 그런데 운석(장면)이나 유석(조병옥)은 뭘 하나? 어째 팔 밀어붙이고 나서서 말리지 않고."이문열의 자전적 소설 '변경'의 첫머리는 기차 에서 옆자리 어른들의 대화를 들..
11 '우리말 큰사전' 완간
"원고가 다 어디로 갔단 말이오?" 1945년 8월 광복과 함께 감옥에서
풀려난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1942년 일어난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회원 33명이 일제에 붙들려 가 혹독한 고초를
당했다. 당시 편찬 중이던 사전의 원고를 ..
10 사사오입 개헌과 제3대 大選
1954년 10월 5일, 서울 명동의 시공관(市公館)에 5000여 명의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좌석이 부족해 입장하지 못한 사람들은 옥외 확성기 앞에서
귀를 기울였다. 이미 '개헌 반대'를 천명했던 조선일보 주최로 이뤄진
'개헌안(改憲案) 대토론회'였다..
09 반공포로 석방과 휴전
1953년 6월 18일 새벽, 미군이 경비하고 있던 부산·대구·광주·마산
등 각지의 포로 수용소에서 갑자기 철조망이 뚫렸다. 그 사이로 쏟아져
나온 포로들을 구출하고 나선 것은 다름아닌 국군 헌병대였다. 당황한
미군은 탱크와 헬리콥터까지 동원해 수색하..
08 '평화선' 선포
1953년 10월 2일자 조선일보는 "평화선(平和線)은 국제법상 정당하며,
일본 어선의 침범은 양국 간의 충돌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는 김병로
(金炳魯) 대법원장의 발언을 보도했다. 전쟁 중이던 1952년 1월 18일
선포한 '대한민국 인접해양의 주권에..
07 6·25 전쟁
출범한 지 채 2년도 지나지 않은 신생 대한민국과 그 국민들에게 너무도
가혹한 참화(慘禍)가 닥쳐왔다.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3년 동안 계속된 6·25전쟁은, 빈약한 사회경제적 기반마저
송두리째 무너뜨린 대재앙이었다. ..
06 반민특위
1949년 1월 8일 해외로 도피하려던화신백화점 소유주 박흥식이 백화점
현관에서 체포됐다. 그를 시작으로 관동군촉탁 출신 이종형, 중추원
참의를 지낸 최린, 경찰 노덕술, 지식인 최남선·이광수 등이 속속
검거됐다. 그들의 혐의는 '일제하의 친일(親..
05 국군 창건
수필가 한흑구는 1946년에 쓴 '닭 울음'에서 이렇게 회고한다. 8월 15일
해방기념식이 열리는 서울운동장에서 젊은 병사들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행진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열렬한 박수를 퍼부었고, 군중 속에
있던70대 노인은 그를 돌아보며 "나는 오..
04 헌법 제정·공포
1948년 7월 18일자 조선일보 1면은 '대한민국 헌법(憲法) 공포(公布)
'라는 톱 제목을 4단으로 배치하고 전날 이뤄진 역사적인 소식을 전했다.
그 옆에는 대형 태극기가 걸린 의사당과 이승만(李承晩) 제헌국회의장이
헌법에 서명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
03 제헌국회 개회
"민주정체(民主政體)에는 민중이 주권자이므로 주권자가 잠자고 있으면
나라는 다시 위태한 자리에 빠질 것이니, 지금부터 시민된 남녀는 다
각각 제 직분과 제 권리를 충분히 이행하며 사용해서 부지런히 분투
노력함으로 국권을 공고케 하며 인권을 보호하여 만..
02 농지개혁
1940년대 말 '새 나라'는 당장 무엇부터 해야 했을까. 국민의 70%
이상이 농민이고 농민의 대다수가 소작농이거나 자작 겸 소작농인
현실에서,신생 대한민국 정부는 농토를 농민에게 분배하는 농지(農地)
개혁부터 실현해야 했다.그러나 개혁의 과정은 ..
01 정부수립 선포식
대한민국 건국(建國) 60주년을 맞은 2008년, 조선일보는 특별 기획
'사진으로 본 건국 60년, 60대 사건'의 연재를 시작합니다. 1948년
대한민국이 태어난 이후 지난 60년은 숱한 도전과 풍파에도 불구하고
헌법의 토대 위에서 민주화와 경제 발..
- 조선일보/이슈,포커스 -
2008.07.16
사진을 클릭하면 원문을 보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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