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바조(1571~1610, 이탈리아)는 통상 예술계의 ‘악동’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공격적인 성격 탓에 싸움에 휘말려 사람까지도 죽였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열정적인 모습과 흡사한 <성 바울의 개종>이
그가 그린 그림 중에서 가장 탁월한 작품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바울과 카라바조의 공격적인 성격은 열정과 능력에서 비롯되니까.
사울(큰자...후에 바울(작은자)로 개명.)은 하나님에 대한 열정적인 사랑과 탁월한 능력이 있었기에
그리스도인을 다 잡아 죽이려고 다마스쿠스로 간다.
사울이 다마스쿠스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쏟아져 그가 말에서 떨어져 땅에 엎어진다.
그는 이 순간을 포착했다.
그리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 구원의 빛을 체험하는
사울의 모습을 생생히 담아내고 있다.
이 그림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사울과 말과 마부.
마부를 한번 보라.
그는 어둠 속에 서 있다.
마부는 사울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다.
자신이 돌봐야 하는 말이 괜찮은지만 살피고 있다.
마부에게 중요한 것은 말이니까.
자기의 일에만 신경을 쓰는 마부를 어둠 속에 묻히게 한 것이
인상적이지 않은가?
마부가 말에만 몰두한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무슨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말을 한번 보라.
말에서 떨어진 사울을 위해 이 말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 말은 불쌍한 자기 주인을 밟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때때로 자기의 소신 때문에 동료를 죽이는 우리의 모습을 볼 때,
짐승보다도 못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한다.
짐승들도 자기 주인은 밟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종종 자기 주인도 밟지 않는가?
자기의 이익 때문에.
사울을 한번 보라.
그는 눈이 멀었다.
잘못된 시각의 열정과 능력이 빚어낸 결과가 그리스도인의 살해였으니까.
그는 말에서 떨어졌다.
잘못된 시각의 권력과 자신감이 순식간에 무너져 버리는 결과를
초래했으니까.
그의 다리는 힘없이 벌어져 있고,
두 팔은 허공을 향해 열려 있고,
멀어버린 눈을 그대로 감고 있는 무기력한 사람이 바로 사울이다.
그는 완전히 바닥을 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새로운 시야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예수님을 박해하던 그가 예수님을 열정적으로 전하게 된 바울(작은자...)이된것이다.
카라바조도 이런 일이 생기기를 희망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자신의 현재 모습,
그 폭력성과 자만심에서 떨어져,
완전한 밑바닥에서 진리의 빛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랐으리라.
사고방식의 전환이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바울은 사고의 전환으로 예수님을 박해하는 사람에서 위대한 사도가 되었다.
카라바조 또한 생각의 전환으로 도피하는 살인자에서 위대한 화가가 되었다.
그 출발은 시력을 잃고 말에서 떨어짐이었다.
우리도 눈을 감고 겸손하게 내가 지금 내 열정과 능력을 무엇을 위해
허비하고 있는지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옮겨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