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내가 택한 금식은...”
사 58:6~9
유석근 목사
(알이랑코리아 대표, 알이랑교회 담임)
이것이 곧 내가 고른 금식이 아니더냐:
곧 악의 속박을 풀어 주고
무거운 짐들을 끌러 주며
억눌린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 주고
멍에 마다 꺾는 게 아니더냐?
너희들의 빵으로 주린 자를 먹이고
헤매고 다니는 가여운 사람들을
너희 집으로 데려 오고
헐벗은 사람들을 보면 옷을 입혀 주고
너희 골육으로부터 숨지 않는 것이 아니냐?
그러면 너의 빛이 아침을 열듯 하며
너의 치료가 빨라지리!
너의 의로움이 너를 앞서 가고
주/야웨님의 영광이 네 뒤를 지키리!
그러면 너희가 부를 때 주/야웨가 대답하리
너희가 울부짖으면 그가 말하리:
"내가 여기 있다"고..
(사 58:6~9)
이사야 58:6은 한국의 많은 기독교 신자들이 사랑하는 말씀이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사 58:6). 일부의 설교자나 성경 교사들은 경건생활이나 병 고침을 위하여 금식을 권하며, 이 성경 구절을 많이 인용하고 낭독하였다. 이들의 주장은 전후 문맥을 무시하고 하나님께서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하고 말씀하셨으니 하나님께서 금식을 기뻐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금식기도원이 생기고, 많은 사람들이 기도원에 가서 금식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정말 금식을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신 것일까? 본문을 살펴보면 오히려 그 반대이다. 금식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매주 일상적으로 하는 종교 활동의 일부였다. 금식을 함으로 자신의 육신의 욕망을 제어하여 영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경건생활은 금식보다는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8절)고 반문하시는 말씀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형식적인 종교 생활보다 사회에서 압제 당하고 핍박 받는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이다. 압제 당하면서 고통 가운데 신음하고 있는 이웃을 외면한 체, 아무리 금식을 해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참된 금식도, 참된 경건도 아니라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본문이 목적하고 의도하는 바이다.
본문 말씀은 남을 돌아보는 것이 참 금식이라고 교훈해 준다. 남의 속박을 풀어 주고 멍에를 끌러 주고 억압에서 놓아 주고... 굶주리고 불쌍한 사람들의 도우미가 되는 것이 곧 금식이라고 말씀하신다. 바로 그게 하나님이 선택한 금식이라는 것이다:
사 58:6~7 이것이 곧 내가 고른 금식이 아니더냐:
곧 악의 속박을 풀어 주고 무거운 짐들을 끌러 주며
억눌린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 주고 멍에 마다 꺾는 게 아니더냐?
너희들의 빵으로 주린 자를 먹이고
헤매고 다니는 가여운 사람들을 너희 집으로 데려 오고
헐벗은 사람들을 보면 옷을 입혀 주고
너희 골육으로부터 숨지 않는 것이 아니냐?”
이것은 단지 윤리적 차원의 말씀이 아니다. 주님의 말씀 “그대의 이웃을 그대 자신처럼 사랑하시오” 하신 것처럼 남의 영, 혼, 육의 처지를 내 처지로 여기고 도와주고 돌보는 데 우선하라는 것이다. 전통과 날짜나 지키고(소위 사순절) 이웃의 고통에는 “나 몰라라”는 삶이 참된 금식 생활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히브리어 본문에는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라는 구절이 없다는 것이다. 마소라 사본은 기뻐하다는 말이 아니라 “선택하다”는 뜻의 히브리어 “바하르”(bachar)를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이 구절은 “내가 선택한 금식은 ...”이라고 번역해야 옳다. 모든 영역본은 "the fast that I choose"라고 번역하고 있다. KJV. ESV. NIV. NASB. RSV. JPS 등 거의 모든 영역본은 마소라 사본에 따라 “내가 선택한 금식”이라고 번역하고 있으며, 오로지 TNK만 “내가 바라는 금식”(the fast I desire)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심지어 중국어 성경도 “선택한 금식”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한글성경은 개역 성경을 비롯하여 최근에 번역된 거의 모든 성경이 한결같이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금식을 장려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는 분명 오역이다. 개역 성경 오역의 한 구절이 한국 성도들의 신학과 신앙에 너무 깊이 뿌리를 내려 성경 번역자들에게까지도 무의식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대표적 사례가 아닌가 싶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시는 경건 생활은 압제 받고, 핍박 받는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고,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이런 행위가 없는 금식은 40일, 심지어 70일을 금식 하더라도 하나님이 선택한 금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글 킹 제임스 성경은 이사야 58:6절을 원문에 맞게 다음과 같이 잘 번역하였다:
6. 내가 선택한 금식은 이것이 아니겠느냐?
사악한 결박을 풀어주고 무거운 짐을 벗겨 주며
억압받는 자들을 놓아주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냐?
Is not this the fast that I have chosen?
to loose the bands of wickedness, to undo the heavy burdens,
and to let the oppressed go free, and that ye break every yoke?
To loose the bonds of wickedness,
To undo the heavy burdens,
To let the oppressed go free,
And that you break every yoke?”
그 외에도 하나님께서는 적극적으로 이웃에게 사랑과 선을 베풀 것을 요구하고 계신다.
7. 굶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눠 주며 방랑하는 가난한 자를 네 집에 데려오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한 벗은 자를 보면 입히고 네 골육으로부터 자신을 숨기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KJV)
Is it not to deal thy bread to the hungry, and that thou bring the poor that are cast out to thy house?
when thou seest the naked, that thou cover him; and that thou hide not thyself from thine own flesh?
Isaiah 58:7 Is It not to deal thy bread to the hungry...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을 주시되 다음과 같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8.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9.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하나님은 이 구절들에서 여섯 가지로 확실한 기도의 응답을 약속하셨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놀라운 내용들이다. 무엇을 더 바랄 수 있겠는가!
① 네 빛이 아침같이 비칠 것이다(8절).
②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다(8절).
③ 네 의가 네 앞에 행할 것이다(8절).
④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할 것이다(8절).
⑤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다(9절).
⑥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9절).
그런데 하나님은 본문에서 우리가 “금식을 하면” 8~9절에 약속하신 그 여섯 가지의 응답을 주겠다고 말씀하시는가? 전혀 아니다. 6~7절에 기록된 대로 다른 사람이 유형무형의 사악한 결박의 밧줄에 묶여서 자유를 잃고 고통 속에 괴로움을 당하고 있다면 내가 가서 그 형제자매나 이웃의 흉악하게 묶여있는 결박을 풀어주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타인을 향해 자비를 베풀고 선을 행할 때 바로 그렇게 응답하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8~9절의 응답은 금식의 결과로 받는 것이 아니다. 금식은 요구조건이 아니다! 하나님은 본문에서 금식을 강조하시지 않는다. 그것은 본문이 목적하는 바가 아니다. 하나님은 계속 10~12절에서 다음과 같은 복도 허락하겠다고 약속하신다:
10. 만일 네 혼을 굶주린 자에게 주어 괴로워하는 혼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어두컴컴한 곳에서 솟아나서 네 어두움이 정오와 같이 되리라.
And if thou draw out thy soul to the hungry, and satisfy the afflicted soul;
then shall thy light rise in obscurity, and thy darkness be as the noonday:
11. 또 주는 너를 계속 인도하여 가뭄에서도 네 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살찌게 하리니
그러면 너는 물 댄 동산 같을 것이며 물이 끊기지 않는 샘물 같으리라.
And the LORD shall guide thee continually, and satisfy thy soul in drought, and make fat thy bones:
and thou shalt be like a watered garden, and like a spring of water, whose waters fail not.
12. 네게서 날 자들이 옛 황폐한 곳들을 세울 것이요,
네가 많은 세대들의 기초를 일으켜 세우리니
네가 ‘파괴된 곳의 보수자’라, 또 ‘거주지로 가는 길을 복구하는 자’라 불리리라.
And they that shall be of thee shall build the old waste places:
thou shalt raise up the foundations of many generations;
and thou shalt be called, The repairer of the breach, The restorer of paths to dwell in.
하나님은 여기에서 아래와 같은 일곱 가지의 큰 복을 주시겠다고 다시 약속하셨다:
① 네 빛이 어두컴컴한 곳에서 솟아나서 네 어두움이 정오와 같이 된다(10절 하).
② 하나님이 너를 계속 인도하여 가뭄에서도 네 혼을 만족케 하여준다(11절 상).
③ 너의 뼈를 살찌게 한다(11절 중)
④ 너는 물 댄 동산 같을 것이며, 물이 끊기지 않는 샘물 같이 된다(11절 하).
⑤ 네게서 날 자들이 옛 황폐한 곳들을 세울 것이다(12절 상).
⑥ 네가 많은 세대들의 기초를 일으켜 세울 것이다(12절 중).
⑦ 네가 ‘파괴된 곳의 보수자’라, 또 ‘거주지로 가는 길을 복구하는 자’라 불릴 것이다(12절 하).
성경을 바로 해석하라. 하나님은 우리가 금식하면 이러한 복을 받는다고 말씀하셨는가? 금식을 요구하셨나? 전혀 그렇지 않다. 10~12절에 기록된 이상 일곱 가지의 은혜를 받는 조건은 10절 상반절에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만일 네 혼을 굶주린 자에게 주어 괴로워하는 혼을 만족케 하면”
And if thou draw out thy soul to the hungry, and satisfy the afflicted soul...
삶의 현장에서 가련한 이웃에게 선을 행하고 사랑을 베풀라고 말씀하신다. 그렇게 하면 10~12절에 약속하신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10~12절에 기록된 일곱 가지 은혜는 금식의 결과로 얻는 것이 아니다. 본문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결코 금식이 조건이 아니다! 하나님은 본문을 통해 “나 여호와는 금식을 기뻐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금식하면 이렇게 복을 베풀어 주겠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본문을 그렇게 이해했다면 그것은 성경을 완전히 곡해한 것이다.
많은 목회자들이 성도들에게 금식을 통한 회복과 치유를 강조하면서 이사야 58:6~9을 제시한다. 또한 성도들은 이러한 목회자들의 가르침을 받아 이 구절이 금식을 장려하는 구절로 인식하고 있다. 그것은 오역에서 기인한 잘못된 해석이다. 적어도 본문에서 하나님은 금식을 기뻐하신 것이 아니다. 금식을 강조하신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금식의 정신이 결여된 위선적, 형식적 종교 생활을 책망했다. 실로 이사야 58:6~12을 성도들을 향해 금식을 장려하는 근거구절로서 제시하는 것은 난센스가 아닐 수 없다.
알이랑 코리아 제사장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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