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복
요한 계시록 19장 9절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사람들은 복을 받고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사는 동안에도 복을 받고 來世(내세)에서도 복을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복이란 것은 흔히 말하기를 세상에서 고생 안하고 편안히 잘 살고 자식도 많이 두고 오래 장수하고 건강하게 살면서 부자로 살면 복 받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복의 개념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복의 개념과는 다릅니다.
성경에서의 복은 하나님의 은혜가 복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구원에 이르게 하심이 복이라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12장 2 - 3절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의 근원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아브라함을 축복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시었습니다.
복의 근원인 아브라함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그러한 복을 받고 살지는 못하였습니다.
복의 근원인 아브라함이 얼마나 고생을 하면서 살았는가를 알아봅시다.
75세의 늙은 나이에 고향을 떠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고향을 떠날 때에는 재산도 없었습니다. 자식도 없었습니다. 100살 될 때까지 자식이 없는 사람이 어찌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또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을 하여 아내를 왕에게 바치고 아내로 인하여 생명을 부지하려는 사람이 어찌 가정의 복을 받은 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브라함은 우리가 생각하는 5복중에 하나라도 복을 받은 일이 없는 것 같습니다.
복의 근원이란 아브라함은 세상에서 고생을 바가지로 많이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각하는 복의 개념과 하나님이 말씀하는 복의 개념은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넘보기에 좋고, 여유 있게 살고, 건강 장수하여야 복을 누리는 것으로 알고 이것을 줏시옵소서 하면서 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복은 다른 것입니다.
시편 133편 3절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영생의 복입니다.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된 것도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지면 영생의 복을 얻는 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영생도 받고 건강도 복으로 받고 물질도 복으로 받게 되는 것이지만, 예수를 안 믿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도 인간이 생각하는 복은 받고 살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 일이 이상하여서 하나님께 질문을 하였습니다.
예레미야 12장 1 - 2절 “여호와여 내가 주와 쟁변 할 때에는 주는 의로우시나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패역한 자가 다 안락함은 무슨 연고니이까 주께서 그들을 심으시므로 그들이 뿌리가 박히고 장성하여 열매를 맺었거늘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 마음은 머니이다”
예수 믿는 사람과 예수 안 믿는 사람이 라스베가스에 가서 놀음을 하면 예수 믿는 사람이 돈을 따야 할 테인데 - 이것이 우리의 생각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돈을 잃고 예수 안 믿는 사람은 돈을 따고 돌아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예레미야도 이일이 이상하여 하나님께 질문을 하였고, 시편 73편의 아삽이란 사람도 역시 악인이 형통함을 보고 하나님께 똑 같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욥기 21장 7절 “어찌하여 악인이 살고 수를 누리고 세력이 강하냐”
이와 같은 의문은 누구나 한번은 갖게 되는 것입니다. 악인이 벼락을 맞아 죽어야 당연한데 왜 기도원에 갔다 오던 목사님이 소낙비를 피하려고 처마 아래에 서 있다가 벼락을 맞아 죽습니까?
제가 서울시 서대문구 천연동 101 번지에서 약국을 할 때에 우리 동네에 당시 재무부 장관을 하다가 나중에는 청와대 비서실장을 한 높은 사람이 살았습니다.
추석이나 명절 때가 되면 이 사람 집을 찾는 사람이 약을 사러 오는 사람보다 더 많습니다. 그들의 자동차를 들여다보면 갈비짝과 사과 상자와 고급 선물 꾸러미가 가득 실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출퇴근 때에 보면 목에다가 힘을 주고 검은 세단 승용차에 앉아 있습니다.
나는 절대로 그 사람을 의인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자기는 그렇게 많은 추석, 명절 때에 선물을 받으면서 추석 선물 주고받지 말자 하는 운동을 벌이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의 집을 가르쳐 준 나에게 인사 한번도 안했으니, 나는 그 사람을 좋게 보지를 않습니다.
예수도 안 믿고 별로 의롭지도 못한데 형통하고 권력 잡고 청와대 비서실장이 되고, 壽(수)를 누리고 세력이 강합니다.
한편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 약국을 하고 있을 때에 같은 교회에 다니는 김 선생님이란 분이 있습니다. 자전거포를 하면서 어렵게 자전거 방꾸를 때워 주고, 고쳐 주면서 근근히 살아갑니다.
그러나 주일날이면 문을 꼭꼭 닫고 주일 학교에 와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성가대도 하고 십일조도 하고 진실 되게 하나님을 섬기면서 믿음과 헌신으로 살아가는 김 선생님입니다.
사람이 양순하여 정말로 그렇게 좋은 사람이 없고 정직하고 진실 되고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정이 이상하게도 일이 안 되어 갑니다.
아버님은 10년 동안 폐병으로 앓다가 죽었습니다. 너무 가난하여 병원에도 못 가고 집에서 앓다가 여름에 죽었습니다.
영구차를 불러오고 장례식 예배를 보고 차에 시체를 싫고 공동묘지로 가려고 하는데 동사무소에서 매장 허가를 내어 주지 않습니다. 사망 진단서가 없으니 매장 허가서를 내어 줄 수 없다고 합니다.
아는 병원의 의사를 찾아가서 사망 진단서를 떼어 달라고 하였더니 자기가 한번도 안 돌아본 사람의 사망 진단서는 떼어 줄 수 없다고 합니다.
다른 병원에 의사를 찾아가서 말하니 그러면 직접 가서 확인하여 보고 진단서를 떼어 주겠다고 하여 택시로 모셔 와서 장례식을 마친 관을 다시 열고 시체를 확인하고 병원에 따라가서 진단서를 받아 왔는데 동사무소에 이것을 갖다가 주니 이것은 사망 진단서가 아니라 검안서이기 때문에 이것은 검찰이 확인을 하고 매장 허가를 해주는 것이라 합니다.
영구차는 와서 기다리는데 사망 진단서, 매장 허가서가 없어서 얼마나 몇 시간을 애를 태웠는지 모릅니다. 그 후에 이웃에 사는 의사를 만나서 사정 이야기를 하였더니 나보고 보증하라고 하여서 내가 책임을 진다하고서 겨우 사망 진단서를 얻어서 장례를 치른 일이 있습니다.
그 후에 6개월이 지난겨울에 자전거포에서 기술을 배우던 꼬마둥이가 겨울에 잠을 자다가 연탄가스에 중독 되어 죽었습니다.
그 김 선생의 어머니는 신 권사라는 분으로 그 날 새벽에도 새벽 기도회에 다녀왔습니다. 새벽기도에 다녀와서 아이를 깨우니 아이가 죽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의 유족들이 배상금을 300만원(1만 딸라)을 내라고 합니다. 위자료를 안주면 송장을 안 가져가겠다고 하면서 1주일이 지나도 방에 그냥 두어서 송장 썩은 냄새가 가득합니다.
저는 당회에 이 일을 말하면서 딱한 김 선생을 도와주자고 말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김 장로님이란 분은 교회에서는 이런 때에 절대로 관심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 하면서 교회에서 외면하여야 그 사람들이 얼른 포기를 하고 가지 교회에서 관심을 가지면 더 야단이다 라고 말하면서 당회에서 다수결로 도와주지 말자고 결의를 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얼마나 딱한지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돈은 없는 집안에 방안에서 송장을 썩어 가고 -- 얼마나 괴로움을 당하였는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를 잘 믿고 교회에 헌신 봉사하고 십일조를 열심히 잘 하였으면 이런 고난이 없어야 할 것이고, 김 비서실장은 한번도 십일조를 안 하고, 예수도 안 믿는데 목에다가 힘을 주고 잘살고 있으니 하나님의 말씀이 모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되지요.
욥기 21장 7 -15절 “어찌하여 악인이 살고 수를 누리고 세력이 강하냐 씨가 그들의 앞에서 그들과 함께 굳게 서고 자손이 그들의 목전에서 그러하구나 그 집이 평안하여 두려움이 없고 하나님의 매가 그 위에 임하지 아니하며 그 수소는 영락없이 새끼를 배게 하고 그 암소는 새끼를 낳고 낙태하지 않는구나 그들은 아이들을 내어 보냄이 양 떼 같고 그 자녀들은 춤추는구나 그들이 소고와 수금으로 노래하고 피리 불어 즐기며 그 날을 형통하게 지내다가 경각간에 음부에 내려가느니라 그러할지라도 그들은 하나님께 말하기를 우리를 떠나소서 우리가 주의 도리 알기를 즐겨 하지 아니하나이다 전능 자가 누구기에 우리가 섬기며 우리가 그에게 기도한들 무슨 이익을 얻으랴 하는구나”
하나님의 복은 세상에서 잘 살고, 돈 잘 벌고 자식 많이 두고, 목에다 힘을 주면서 살고 있는 것이 복이 아닙니다.
20년이 지난 지금 이 두 사람의 결과를 보니까 한 사람은 정말 복을 받았고 한 사람은 복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김 선생은 지금 김형율 목사님이 되어서 전라남도 화순군 북면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영혼 구원을 힘쓰면서 살고 있고, 목에다가 힘을 주고 살던 사람은 대통령이 죽으니 그 사람도 비참하게 되어 예수도 안 믿다가 고혈압으로 쓸어져 죽었습니다.
시편 73편 16절-17절 “내가 어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내게 심히 곤란하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우리는 세상을 떠날 때에, 관 뚜껑을 덮은 후에 그 사람이 복을 받은 사람인가 아닌가를 평가하여야 합니다.
세상에서 돈이 말고 잘 살고 행복하였다고 말을 하여도 지옥에 들어가는 사람은 절대로 복을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중국에 1991년도에 갔을 때에 세린하라는 곳에 서 할머니가 죽었습니다.
서 할머니는 목사 딸로서 신앙을 지키며 어렵고 힘들게 농촌에서 살다가 죽었지만, 하나님께서 장례식을 목사님 두 분이나 보내어 장례식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남 목사와 제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 분의 장례식을 인도하였습니다.
우리가 가난하고 힘들고 어렵게 살아도 우리는 생명을 얻은 자로서 참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1. 세상 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나도 역시 세상사람 부럽지 않네
하나님의 크신 은혜 생각 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2. 성령 충만 받은 것을 ~ ~ ~ ~
3. 신랑 예수 신부 된 것 ~ ~ ~ ~
4. 영원토록 누릴 영화 ~ ~ ~ ~
우리는 하나님의 참된 복을 받은 자요 또 누리고 있는 복된 자입니다.
우리의 참된 복은
1.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복입니다.
시편 73편 28절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
우리는 이런 복, 저런 복 등 복의 개념을 다르게 할지라도 최종적인 참 복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복 이상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면 하나님께서도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십니다.
야고보서 4장 8절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와 가까워지는 것 이상의 복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BACKGROUND가 되어 주십니다.
중국에 가니까 미국에서 사는 나를 복 받은 사람으로 알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중국에 사는 친척들이 내가 거기에 다녀오니까 모두 사기가 올랐다고 합니다.
내가 준 사진기를 가지고 뽐내며 자랑하니까 나도 미국에 친척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참으로 부러워하더랍니다.
나 같은 별 볼일 없는 사람도 중국에 가니까 나 때문에 사기가 오른다고 말하는데 하물며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과 가까운 사람은 이보다 몇 만 배 더 사기가 올라야 합니다.
어째서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것이 복입니까?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을 아끼지 않고 자기와 가까운 사람이 구하는 것을 다 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 32절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자기 독생자 아들까지 아끼지 않으시고 주신 분이신데 그까짓 소소한 물건이나 요구를 못 들어주실 하나님은 아니십니다.
나 역시 중국에 갈 때에 미국 물건을 많이 사 가지고 두 보따리를 들지 못할 정도로 하여 가지고 갑니다. 그런데 선물을 나누어 줄 때에는 나와 가까이 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선물을 더 많이 줍니다. 요셉이도 11형제를 만났을 때에 자기와 가까운 베냐민에게는 다른 형제보다 5배나 더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자기를 가까이 하는 사람에게는 5배 이상을 더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는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가까이 하십니다.
제가 금식 기도를 계속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생활을 놓치기 싫어서 입니다.
신명기 4장 7절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의 가까이 함을 얻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 할 때마다 기도 한만큼 가까이 하십니다.
기도를 안 할 때에는 저 멀리 하나님이 계신 것 같이 여겨지고 기도를 하면 아버지하고 부르면 “오냐”하고 즉시 대답하시는 하나님으로 들려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어느 정도 가까이 하시는 가는 기도를 많이 하여 본 사람은 알게 됩니다.
나의 경험으로는 하나님이 내 속에까지 들어와 계시는 하나님이심을 느껴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내 속에 계심을 느끼는 사람은 무슨 일이든지 할 수가 있고 능력이 나타납니다.
둘째로는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에게 가까이 하십니다.
사무엘 상 15장 22절 - 23절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과 가까이 하십니다. 불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버리시고 멀리하십니다.
사울 왕이 순종 할 때에는 왕으로 세움을 받았고, 교만하여 불순종 할 때에는 버림을 받은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을 대신 그 자리에 채워 세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 이상의 복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은 항상 부족함이 없이 만족함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돈 100만 딸라를 가지고 부족하게 사는 사람들보다는, 10딸라를 가지고 만족하게 사는 사람이 더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루에 돈을 1,000 딸라씩 벌어도 쩔쩔 매면서 1,500 딸라를 더 벌지 못한 것을 한이 되어 놀지도, 쉬지도 못하고 돈의 노예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루에 50 딸라를 벌어도 만족하게 기쁘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한 사람의 증거는 만족함이 넘쳐 나는 것입니다.
2. 악인의 길에 서지 않는 것이 복입니다.
시편 1편 1절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아무리 인간이 추구하는 요구를 다 갖고 돈이 많고 자식 많고 건강하고 잘 살아도 악을 좇으면서 사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흔히 뉴스에서 많이 보는 것같이 마약 장사들이 돈을 수없이 많이 벌어도 그 사람을 복되다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런 돈이 탐이 난다면 이 사람도 역시 악인의 길에 선 사람입니다.
가난해도 정직하게 땀 흘려 벌은 돈 100 딸라가 더 값진 것이고 이러한 돈을 하나님께 바칠 때에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십니다.
신명기 23장 18절 “창기의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아무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
우리는 악인의 길에 서지 않고 믿음을 따라서 의롭고 성결하게 살아갈 때에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복이 있는 사람이라 하시고,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고 잎이 마르지 않는 복을 주십니다.
오늘날까지 이 복된 길을 걸어 왔으니 장래에도 이 길을 한결 같이 걸어서 하나님 나라에 갈 때까지 악인의 길에 서지 않는 복을 누리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3. 가난함이 내게 복입니다.
누가복음 6장 24 - 26절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성경에는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도 복이 있고, 물질이 가난한 사람도 역시 복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음식도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모든 음식을 감사함으로 먹습니다.
無病長壽(무병장수)하고 건강하고 성인병도 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자는 너무 먹어서 콜레스톨이 많고, 스트레스가 많고, 성인병이 많이 생겨 고혈압, 당뇨병, 암이 생기는 것입니다.
가난할 때에는 기도도 열심히 잘하고, 새벽 기도회를 비롯하여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여 초롱초롱한 눈빛을 가지고 정성껏 예배를 드리지만, 부자들은 마지못해 교회에 와서 눈을 감고 잠을 자면서 예배를 드립니다.
귀는 커지고 배는 물러서 말씀이 들어오지 못하니 뒤에 하는 소리가 내가 교회 3년 다녔는데 신앙이 안 자랐으니 목사님 책임이라는 말을 합니다.
심령이 가난치 못하고 물질도 많아 배부르고 등이 따듯하니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는 세상 재미를 더 찾는 것입니다.
부요한 자가 화가 있다는 말씀을 잘 새겨들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도 새겨 두어야 합니다. 부자는 호의호식하며 날마다 잔치를 하다가 지옥에 갔고 가난한 거지 나사로는 천국에 갔다는 말씀도 새겨 두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9장 23 - 24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여기서 부자는 마음이나 정신적인 부자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재산이 많은 부자를 가르치면서 말씀한 구절입니다.
재산이 쌓이고 돈을 벌고 잘 살수록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까 믿음 생활을 더 가난할 때보다 열심히 하여야 하는데 반대로 나아가니 큰 일이 날것입니다.
가난하여서 먹고살기 위해 시간이 없어서 기도를 못하는 사람보다는 너무 많이 먹어서 잠이 쏟아져서, 게을러서 기도를 못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입니다.
우리가 가난하다고 하여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이 이 가난을 나에게 주심으로 탐 복을 받게 하여 주신 것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내가 물질이 많았기 때문에 천국에 못 들어간다면 이것은 부요가 복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요하여도 능히 천국에 들어 갈 수 있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더 열심히 하고 주신 물질을 선한 일에 더 많이 사용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서 살 때에 부요가 화가 되지 않게 됩니다.
마태복음 19:26절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가난한 것이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복으로 알고 이 복을 헛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어렵기 때문에 더 기도하고 매달리어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복에 참례하게 된 것입니다.
4.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요한 계시록 1장 3절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하나님의 말씀을 집에서 읽고 교회에서는 정신 차려 열심히 듣고 일상생활에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면서 사는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의 생각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면 참으로 복이 있는 자가 될까요?
절대로 복이 있는 사람이 되지 않고 더 문제가 많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지키면서 살아갈 때에 참으로 복이 있는 사람이 됩니다.
천국은 지켜서 행하는 자가 들어가는 곳이지, 알기만 하고 지식으로 믿고 있는 사람이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요한 계시록 22장 7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말세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참으로 복을 누릴 사람이고 참 복된 사람입니다.
요한 계시록 19장 9절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키며 행한 자가 공중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는 복된 자가 되는 것입니다.
회개하라 하였으니 우리는 날마다 잘못을 회개하면서 고쳐 가면서 살아야 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였으니 우리는 기도 생활에 힘쓰면서 살아가야 할 것이고, 용서하라 하였으니 용서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이고, 이웃을 사랑하라 하였으니 사랑하면서 말씀을 지키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하신 일을 우리가 알지 못하여 지키지 못한 것도 역시 죄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가 과연 무엇을 지킬 것인가를 더욱 발견하고 그대로 지켜 행하면서 살아가야 하나님 앞에 온전한 사람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정리:
우리는 이제 복이 무엇인가를 알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생각하는 복과 성도들이 생각하는 복은 개념부터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복은 우리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죽었는가를 복으로 생각하지 않고, 영생에 참례하는가? 못하는 가를 가지고 복된 자인가 아닌가를 판별하십니다.
특별히 말세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 복에 참례하도록 말씀을 듣고 읽고 알고 하여 이 말씀을 지키고 행하고 천국 혼인 잔치에 참석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최소한으로 지켜야 할 말씀은 십계명만큼은 어김없이 지켜야 하겠습니다.
요한 1서 5장 3절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우리는 능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의 계명은 능히 잘 지킬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거나 적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고, 내 생각을 좇아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어도 우리가 얼마든지 잘 살고 영원한 행복을 누리고 살 것 같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삶을 살아서 참 복을 누리는 사람이 되십시다.
더구나 우리 모두는 천국에 참석하는 영생의 복을 누리는 우리들이 반드시 되어야 하겠습니다.
저는 교회에 참석하여 예배 시작 전에 기도를 할 때에, 오늘 함께 예배에 참석한 주님을 사랑하여 여기에 모인 성도들, 모두 다 낙오하는 사람이 없이 천국에서도 함께 예배하는 성도가 되게 하여 달라고 기도를 드립니다.
마찬가지로 이 글을 읽으신 분들도 천국에 참례하여 천국에서 은혜(저)를 만나 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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