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과 진리로 예배할찌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요4:24)****************
요한복음4:24절을 보면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예배[禮拜] 시전적인 의미는 초월적인 존재에게 경배하는 의식 또는 그런 의식을 행하는 것을 예배라고 합니다. 이 사전적인 의미는 순전히 세상 적이라는 것을 먼저 이해를 해야 합니다. 왜 세상적인 가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바로 이해를 하면 알게 됩니다.
예배 너무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중요한 예배에 대해서는 성경은 단 10차례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제사가 있어 예배와 거의 비슷한 어원으로 사용되어지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사와 예배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배에 대해 예수님께서 무엇이 예배인가를 가르쳐 주시기 위해 요한복은4장에서 무려 5차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배가 무엇인가를 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말씀이 바로 요한복음4장입니다 요한복음4장을 바로 이해를 해야 성도가 바른 예배를 할 수 있습니다.
예배를 모른다면 그는 성도가 아닙니다. 아니 구원을 받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예배 하지 않는 자를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예배하지 않는 자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의 신앙은 결국 헛것이 되고 맙니다.
예배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 다양한 예배를 드리고 또 열린 예배라고 하는 신종 어까지 탄생 되어 예배에 열심을 다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과연 그런 예배가 참다운 예배인가를 우리는 냉정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내 예배가 바른 예배가 아니라면 그것처럼 불행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나는 평생을 하나님께 예배 했는데 그래서 천국에 갈 줄 철썩 같이 믿고 있었는데 내가 예배한 그것이 만약 예배가 아니라면 그것처럼 난감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예배가 무엇인가를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이 세상적인 그런 예배가 아니라 성경에서 가르쳐 주는 예배가 무엇인가를 알고 예배하는 자가 되어야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기뻐 받으시고 그를 이 세상에서 건져 내 주실 것입니다
예배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고 예수님께서 예배에 대해서 정확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우리와 같은 육체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내 몸으로 드려지는 모든 예배라고 하는 의식은 사실 육적인 것입니다 육과 영을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이시기 때문에 반드시 우리도 영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영은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신이라고 하는 모든 것은 형상을 만들어 놓고 그 앞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소불위하시고 전지전능하셔서 우리 인생이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볼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은 영이시라고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예배하려면 우리 또한 보이지 않는 것으로 예배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데 우리는 보이는 것으로 예배를 한다면 그것은 서로 대적을 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보이는 것으로 해야 맞는 예배입니다 이 세상 신은 형상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예배라는 단어는 기독교만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번역을 하다 보니까 예배라는 단어로 번역이 된 것이지 마치 그것이 기독교에서만 사용되어 지는 단어로 오해를 해서는 안 됩니다
성도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해야 합니다. 신령과 진정이라는 단어는 번역의 차이가 있음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과 진리로서 해석이 되는 단어입니다. 성령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까? 진리를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당연히 성도라면 이 세상 사람들이 자기들의 신에게 자기 몸으로 드리는 그런 예배가 아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해야 합니다. 예배를 드린다는 말에 참 익숙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예배를 드린다고 하지 않고 예배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로마서12장 1절에 산제사를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2:20절을 보면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사도행전8:27절을 보면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사도행전24:11절을 보면 “당신이 아실 수 있는 바와 같이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 이틀 밖에 못되었고”
왜 예배를 드리라고 하지 않고 한다고 말씀을 했습니까? 내 몸으로 하는 것은 드리는 것이 맞습니다. 그래서 로마서12장 1절에는 사도 바울이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하는 것은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예배하는 것이 맞습니다.
예배는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 맞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하는 예배는 그 주체가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성령의 감동을 받는 것이고 또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는 그것이 예배이기 때문에 한다고 하는 표현이 맞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영적 예배는 참 잘 드리는데 예배를 하는 자가 거의 없습니다.
영적 예배를 드릴 줄은 잘 아는데 예배를 하는 성도가 없다는 말씀을 주의 깊게 이해를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영적 예배와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는 예배 그리고 요한복음이나 사도행전에서 말씀을 하는 예배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영적 예배는 내 육체를 통해 나타나는 것이고 예배를 하는 것은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하는 것입니다 성령과 진리는 내가 볼 수도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에 따라 믿음으로 이해되어 지는 것입니다 성도는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는 영적인 예배도 물론 드려야 하지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하지 않는다면 그는 성도라 할 수 없습니다.
예배를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사마리아 여인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4:10절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예수님께서 수가성에 있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니까 사마리아 여인이 유대인이 어찌하여 자기에게 물을 달라고 하느냐고 반문을 할 때 예수님께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했을 것이라고 동문서답을 하고 있습니다.
물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당연히 우물에 물을 길러 온 사마리아 여인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물을 달라고 하시고 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네게 물을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가를 알았으면 좋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 행색으로 보아서 유대인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자기를 구원해 주실 메시아라는 것을 모르고 예수님이 물 좀 달라고 하니까 육적인 물을 주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내가 누구인가를 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여자에게 네가 나를 알았다면 나에게 생수를 구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도무지 이해를 하지 못하면서 반문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4:11-12절을 보면 “여자가 가로되 주여 물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예수님은 물길을 그릇이 없습니다. 빈손으로 와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달라고 하시고 나서는 네가 나를 알았다면 네게 말하는 그에게 네가 생수를 구했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주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시니까 사마리아 여자가 주여 물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이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습니까? 묻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놀라운 이야기를 합니다. 이 우물은 우리 조상 야곱이 우리에게 주었고 또 야곱이 자기와 그 아들들이 이 우물을 먹었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냐고 묻습니다. 이 우물은 분명히 야곱이 주었는데 예수님은 물길을 그릇도 없으신데 여자에게 생수를 주시겠다고 하니까 여자가 당신이 이 우물을 준 야곱보다 더 크냐고 묻는 것입니다
이제 예배가 시작되었습니다. 생수를 얻기 위해 자기 조상 야곱이 준 우물에 나왔는데 예수님께서는 물길을 그릇도 없는데 생수를 주시겠다고 하니까 사마리아 여인은 당연히 그런 당신이 우리 조상 야곱보다 더 크냐고 물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요한복음4:13-14절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예수님께서 너희 조상 야곱이 준 이 우물을 먹는 자는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주는 물은 너희 조상 야곱이 준 우물물과는 달라서 이 물을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영적인 말씀을 하시고 있고 사마리아 여인은 육적인 물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생을 하는 물을 말씀을 하고 있는데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이 주시는 물을 먹으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는 육적인 물을 생각하고 그 물을 달라고 합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다시 물을 길러 올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주시겠다고 하니까 당연히 그 물을 달하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4:15절을 보면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은 지금 서로 다른 말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 말 속에서 서로가 교통을 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으로서는 사막의 기후에서 대 낮에 물을 길러 나오는 수고를 덜 수 있다는 것은 너무도 좋은 일이기 때문에 예수님에게 그 물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또 다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4:16-19절을 보면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 되도다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의 치부를 일부러 드러내셨겠습니까? 지금 예수님께서는 이 사마리아 여인을 통해 예배가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시기 위해 남편을 데려 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이 여자가 나는 남편이 없다고 대답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자의 형편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를 가르쳐 주시기 위해 지금 하나하나를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네 말이 맞다 네가 남편이 다섯이 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 되도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자가 깜짝 놀라서 이제는 예수님을 다시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보니 선지자인 것 같습니다. 이제까지는 예수님을 그저 유대인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냥 유대인이 아니라 선지자로 보여 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기의 모든 형편을 정확히 아는 것을 보니 분명히 선지자인 것입니다 이 여자는 예배를 하고 싶어도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사람들과 상종을 하지 않음으로 예루살렘에 가서 예배를 할 수 없었습니다.
요한복음4:20절을 보면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수님이 선지자로 보이니까 이제는 자기 스스로 예배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이 상종을 하지 않아서 예루살렘에 가서 예배를 하지 못하니까 사마리아에 있는 산에서 자기들만의 예배를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자기 모든 것을 아는 선지자이니까 이제 예배를 어디서 해야 맞느냐고 예수님께 묻고 있습니다.
요한복음4:21절을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예배를 교회에서 드립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배는 어떤 장소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는 교회를 지어 놓고 그것을 성전이라고 하면서 마치 그 안에서 예배를 해야 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장소에서 예배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건물로 지어진 교회라는 장소에서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하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때만 해도 어디서 예배를 했습니까? 사마리아 사람들은 사마리아에 있는 산당에서 예배를 했고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4:22절을 보면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이 산에서 예배를 하고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하는 것은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배에 대해서 정말 심각하게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나 유대인들이나 모두가 알지 못하는 예배를 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는 것은 한 마디로 우상을 섬기는 것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구원은 유대인에게서 납니다. 예루살렘에서 예배하는 유대인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유대인에게서 구원이 난다는 말씀입니다. 로마서2:28-29절을 보면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가 바로 이면적인 유대인이라는 말씀이며 그 유대인에게 구원이 난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표면적 성도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 들어와 자기가 예배하는 그것을 보며 마치 성도가 된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표면적 유대인이 아니라 이면적 유대인이 되어야 합니다. 표면적 유대인이 누구입니까?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던 그들이 바로 표면적 유대인입니다. 그런 유대인의 예배를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4:23절을 보면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표면적으로 예배하는 것이 예배가 아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하는 것이 참 예배라는 말씀입니다 이제 예수님이 오셔서 이면적으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할 수 있는 때가 왔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배 표면적 예배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찾으시는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바로 이면적인 예배하는 자를 찾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지금 표면적 예배를 하고 있나 아니면 이면적 예배를 하고 있나 냉정하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른다면 그는 교회에 나와 평생을 예배 했어도 표면적인 예배를 한 이스라엘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지금도 찾으십니다. 예배를 드리는 자들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예배하는 자를 찾고 계신다는 것을 바로 인지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내 몸을 산제사로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 드릴 영적 예배입니다 그 예배와 예배하는 자를 찾는 것은 분명히 다른 것이며 하나는 영적 드릴 예배는 내 몸을 통해 나타나고 있지만 예배하는 자는 성령의 감동으로 진리를 알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고 예배에 대해 가르쳐 주십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배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깨달았습니다.
요한복음4:25-26절을 보면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 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예배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예배에 대해서 바로 알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예수님께서 내가 그로라 하고 말씀을 하십니다. 지금까지 예배를 가르쳐 주시면서 그 결론이 무엇이냐면 자기가 그리스도라고 사마리아 여인에게 상세하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사마리아 여인은 자기 동네로 들어가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예수를 안 그것이 바로 예배라는 말씀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는 어떤 형식을 따라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형식에 상관이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를 메시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그것이 바로 예배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는 나를 구원할 주라는 뜻입니다 나를 구원하실 주를 영접하고 그를 받아들이며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 바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 예배는 많으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는 아주 적습니다. 교회에 가서 예배를 참석해 보아도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겨우 예수 믿으라는 입바른 말 한마디하고 도덕 선생이 되어 가르치고 예화와 세상 이야기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예배를 드리면서 스스로 흡족해 있습니다.
그런 예배를 예배가 아닙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예배는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가르쳐 주고 그것을 믿게 하는 것이 바로 예배라는 말씀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시대는 이스라엘과 같이 자기 몸으로 드리는 예배에 집착을 하면서 자기들의 기쁨이 되는 예배를 드리고자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예배는 예수를 아는 것이 예배입니다 예수를 알려면 반드시 보혜사 성령이 임하셔서 그가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실 때 바로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참 예배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샤머니즘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가 잘못 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형식에 빠져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을 게을리 하는 예배는 결국 샤머니즘적인 예배에 불과하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하고 있지만 한 사람은 샤머니즘적인 사상에 메여 자기 몸으로 지극 정성을 다해 예배를 드리고 있고 한 사람은 성령의 감동하심에 따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배에 대해서 가르쳐 주시면서 결국 누구를 말씀을 하셨습니까? 그 결론은 내가 그리스도다라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듣고 사마리아 여인은 또 다른 예배하는 자를 찾기 위해 동네로 가서 자기가 예배한 예수 그리스도를 보라고 전파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내 예배가 어떤 예배인가를 생각하시고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출처:그리스도의 편지
음악출처:하늘까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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